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알듯 모를듯, 알송달송한 이 문장은 우리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이다.
본래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문장인데, 이를 쿠마라지바가 한자를 차용하여 번역한 문장이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한자를 차용하여 번역한 것이어서 그대로 우리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 뜻을 어찌 알리요.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문구도 사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산스크리스트어를 우리 말로 읽고 싶은데, 우리는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사용하던 한자의 발음을 빌려 번역해 놓은 것이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염불을 외워도 도로아미타불이라고 한 것이다.
영어를 번역하는데, apple을 한글로 "애플"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해 보자.
《애플》은 영어 단어를 읽기 위해 한글을 차용한 것 뿐이다. 애플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뜻이 없다(애가 풀뜯어 먹는 소리?).
그러니 아무리 애플을 외워도 《사과》라는 뜻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한글로 애플은 영어 apple를 번역한 것이라는 알고, 애플하는 순간 사과를 떠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플로는 영원히 "사과"를 알 수 없다.
게다가 한자를 공부해야 하고, 한자에 담긴 철학도 알아야 이해와 깨달음을 얻는다.
원문은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그 뜻은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불교에서 색(色)은 '물질'적 존재, 즉 변화하고 소멸되며,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사물"을 총칭한다.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의 네 가지 원소에 의해 구성된다고 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 불, 흙, 공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탈레스의 물,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에 이어, 흙까지 더한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이 탄생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에 권위를 부여했다. 이것을 유물론이라 말한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
prajñāpāramitā-hṛdaya-sūtraṃ
नमःnamaḥ सर्वज्ञाय sarvajñāya
आर्यावलोकितेश्वरो ārya avalokiteśvaro
बोधिसत्त्वो bodhisattvo
गंभीरायां gaṃbhīrāyāṃ
प्रज्ञापारमितायां prajñāpāramitāyāṃ
चर्यांcaryāṃ चरमाणो caramāṇo
व्यवलोकयति vyavalokayati स्म sma । पंचस्कन्धाःpañca-skandhāḥ । तांश्चtāṃśca स्वभावशून्यान्पश्यतिsvabhāva-śūnyān paśyati स्मsma । इहiha शारिपुत्रśāriputra रूपंrūpaṃ शून्यताśūnyatā शून्यतैवśūnyatā-eva रूपंrūpaṃ रूपान्नrūpān-na पृथक्शून्यताpṛthak śūnyatā शून्यतायाśūnyatāyā नna पृथग्रूपंpṛthag rūpaṃ यद्रूपंyad rūpaṃ साsā शून्यताśūnyatā याyā शून्यताśunyatā तद्रूपंtadrūpaṃ । एवमेवevameva वेदनासंज्ञासंस्कारविज्ञानानिvedanā saṃjña saṃskāra vijñānāni । इहiha शारिपुत्रśāriputra सर्वधर्माःsarva-dharmāḥ शून्यतालक्षणाśūnyatā-lakṣaṇā अनुत्पन्नाanutpannā अनिरुद्धाaniruddhā अमलाamalā नna विमलाvimalā नोनाanonā नna परिपूर्णाःparipūrṇāḥ । तस्माच्छारिपुत्रtasmācchāriputra शून्यतायांśūnyatāyāṃ नna रूपंrūpaṃ नna वेदनाvedanā नna संज्ञाsaṃjñā नna संस्काराsaṃskārā नna विज्ञानानिvijñānāni । नna चश्रुःश्रोत्रघ्राणजिह्वाकायमनांसिchakṣuḥ śrotra ghrāṇa jihvā kāya manāṃsi । नna रूपशब्दगंधरसस्प्रष्टव्यधर्माःrūpa śabda gandha rasa spraṣṭavya dharmāḥ । नna चक्षुर्धातुर्यावन्नcakṣur dhātur yāvan na मनोविज्ञानधातुःmano vijñāna dhātuḥ
। नna विद्यvidyā नाविद्यna avidyā नna विद्याक्षयो vidyā-kṣayo
नाविद्याक्षयोna avidyā-kṣayo
यावन्न yāvan na
जरामरणं jarā-maraṇaṃ न na जरामरणक्षयो jarā-maraṇa-kṣayo नna दुःखसमुदयनिरोधमार्गा duḥkha-samudaya-nirodha-mārgā
नna ज्ञानं jñānaṃ न na
प्राप्तिर्नाप्राप्तिः prāptir na aprāptiḥ ॥
तस्मादप्राप्तित्वाद्बोधिसत्त्वाणां tasmāda prāptitvād bodhisattvaṇāṃ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विहरत्यचित्तावरणः viharatyacitta-āvaraṇaḥ । चित्तावरणनास्तित्वादत्रस्तो citta-āvaraṇa-nāstitvād atrasto विपार्यासातिक्रान्तो vipāryāsa-atikrānto निष्ठनिर्वाणः niṣṭhā-nirvāṇaḥ ॥
त्र्यध्वव्यवस्थिताःtryadhva-vyavasthitāḥ सर्वबुद्धाःsarva-buddhāḥ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नुत्तरां prajñāpāramitām āśritya anuttarāṃ
सम्यक्सम्बोधिमभिसंबुद्धाः samyak sambodhim abhisaṃbuddhāḥ
तस्माज्ज्ञातव्यं tasmāj jñātavyaṃ
प्रज्ञापारमिता prajñāpāramitā
महामन्त्रो mahā-mantro महाविद्यामन्त्रोmahā-vidyā-mantro ऽनुत्तरमन्त्रो'nuttara-mantro ऽसमसममन्त्रः'samasama-mantraḥ सर्वदुःखप्रशमनःsarva-duḥkha-praśamanaḥ । सत्यममिथ्यत्वात्satyam amithyatvāt । प्रज्ञपारमितायामुक्तोprajñapāramitāyām ukto मन्त्रःmantraḥ । तद्यथाtadyathā गतेgate गतेgate पारगतेpāragate पारसंगतेpārasaṃgate बोधिbodhi स्वाहाsvāhā ॥
इतिiti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 prajñāpāramitā-hṛdayaṃ समाप्तंsamāptaṃ ॥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以無所得故 菩提薩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은 인도불교 진수를 보여 준다.
한국식 불교가 아니다.
불교는 한국태생이 아니라 인도태생이다.
그러므로 인도의 당시 사회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먼저는 힌두교를 이해하고, 힌두교의 문제점과 당시 힌두교가 어느 종족에 의해 탄생되었나? 그들은 무엇을 추구했나?
왜 이런 흰두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나?
당시 대자수의 백성들이 힌두교에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그냥 전통으로, 삶의 지대한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무맹목적적으로 수용하고 따르고 있었다.
이것을 무너뜨리고 불교는 극복하려고 나온 힌두교의 불합리성과 그 폐해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불교와 힌두교는 고대 인도 문화에서 공통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불교는 기원전 500년경에 "두 번째 도시화" 동안 인도 북부의 동부 갠지스 문화에서 발생했다.
두 종교 모두 카르마(업, 업보, 응보) 와 환생(윤회)를 공통으로 믿는다. 둘 다 환생의 주기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열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탈》은 인도의 자이나교, 불교와 힌두교의 <중심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삼매(三昧)를 중요하개 여기는데, 사마디는 고요함 · 적멸(寂滅) · 적정(寂靜)의 명상 상태를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나(아트만, 원래 뜻은 숨쉰다) 곧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우리가 흔히 생명을 목숨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숨쉬는 생명인 아트만은 '나'인데, 한자로는 아(我)로 표기한다.
히두교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근원인 《브라흐만 : 우주의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 한자로는 범(梵)으로 음역(音譯)된》을 설정하여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범아일여, 梵我一如)이라고 파악한다. 우주가 사람 안에 있고, 사람은 우주 안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는 이를 거부하고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를 주장한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바라밀다 심경이 쓰인 것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로 표현되는 이 문장은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리킨다.
(물질세계)세상을 넘어 (본질의) 세상의 근원을 가리킨다.
산스크리트어 원문 제목은 '쁘라야-빠라미따-히르다야-수뜨라'다.
산스크리스트어 '쁘라야'를 한자로 '반야'로 음차했으니 한자로 의미를 찾지 말아야 한다.. 반야도 한글로 읽으면 '반약'이다.
'쁘라야'(반야)는 지혜로 '매우 넓고 깊음의 지혜'을 의미한다.
'빠라미따(바라밀다)'는 '완성'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번역하면
'마하(摩訶 maha) = 크다. 많다. 위대하다. 뛰어나다. 심묘하다는 뜻이다.
'마하=큰, 반야= 지혜, 바라= 저 언덕에 이르는, 밀다=건너다, 심경=마음에 새길 글'
"위대한 지혜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게 하는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의 글"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어 / 한자 음차 번역
• 마하(maha) : 마하(摩訶)는 "크다, 많다"
• 프라즈냐(prajna) : 반야(般若)는 "생명 내부의 움직임 속에서 절로 솟아나는 지혜" 즉, 법의 이치를 깨달은 근원적이며 최상의 지혜
• 파라미타(parammita) : 바라밀다(波羅蜜多)
"이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건너게 하는 완성"
• 여기에서 파람과 이타를 나누어 각각 해석하면(param + ita)가 되고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상태"
•흐리다야(hrdaya)를 의(意)역함 : 심(心) -
'심장 또는 핵심, 정수'
•수트라(sutra)의 의(意)역 : 경(經) - 성스러운 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깊은 지혜의 깨달음을 주는 마음에 새겨야 할 글이라는 뜻이 된다.
왜 이렇게 번역되는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이 이것을 가리키고자 한 말이기 때문이다.
‘바라밀다, 빠라미따’ : ‘도피안(到彼岸, 저 언덕에 도달했다)’ 그 곳은 어디인가? 이 곳, 이 세상의 반대 편을 의미한다.
‘히르다야(심)’도 ‘마음’이 아니라 ‘핵심, 정수’를 뜻한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삼가떼 보디 스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떼(아제)는 ‘가신 분’ ‘소멸되어버리신 분’으로 번역하지만 이 또한 정확한 번역이 못된다.
빠라가떼(바라아제) : ‘저쪽으로 건너갔다’ 보다는 ‘열반으로 가신 분’으로 번역하는데 이 것도 2% 부족하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의 힘으로 저 언덕에 이르는 중요한 핵심'이다.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등으로 번역하지만, 이것도 부족하다.
없음이 곧 있음이며, 있음은 곧 없음이다.
무슨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냐고?
문해력과 이해력이 필요
'마하반야바라밀다' 제목은 전체의 의미를 입축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목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게 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마치 깨달은 것처럼 잘못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산스크리스트어를 해석해서 읽는 편이 마하반야바라밀다 천만번 외우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산스크리스트어로 번역을 해도 문해력이 필요하다. 또 그것을 깊은 이해하는 능력도 있어야 "진수, 핵심,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마치 이와 같다.
그런데, 불교를 안다하고 긴다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은 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봉창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런데 봉창의 뜻을 모르니?
● 봉창 은 무엇인가?
옛날 흙벽돌집에 채광과 통풍을 위해 벽을 뚫어서 작은 구멍을 내고 창틀이 없이 안쪽에서 종이를 발라 봉한 창을 말한다.
이 봉(해진) 창(문)으로 문은 문인데, 열 수도 없고, 두드릴 수도 없는 아주 작은 문을 말한다. 근데 잠결에 문을 찾느라 "봉창"이 문인 줄 알고 열려고 더듬거리다가 내는 소리가 바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된 것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전혀 관계없는 얼토당토한 말을 꺼낼 때 '새벽 봉창 두드린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 라고 표현한 것이다.
봉창은 봉해진(한) 아주 작은 창(문)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