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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입니까?

사도바울은 "사랑의 사람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고전 13: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rejoice in the truth)

사랑은 진리와 입맞춤합니다.
사랑은 진리를 그리워하고,

진리는 그 사랑을 결코 숨기지 않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볼 수 없게 눈을 가리웠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간절히 구하는 자들에게만 그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진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기를 나타냅니다.

 

공개된 비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셨다면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요14:6)

예수는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시기 이전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 창조주요, 중보자인 창조중보자이셨습니다.
그는 영원하신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영생)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었습니다.
빛은 <무지, 어둠, 눈멈(영적 소경)>의 반대어입니다.

빛이 없으면 무지와 어둠과 눈멈 속으로 들어가고,

빛이 비취면 깨우침, 자유, 광명으로 나아오게 해 줍니다.
빛으로 나오는 자마다 생명을 얻습니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진리는 분명 심오하지만, 공개된 비밀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진리는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공개되었으나,

그렇다고 누구나 그 진리를 깨닫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도 많습니다.
글은 읽는데, 글을 해독하는 능력이 없는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문장을 읽을 수는 있어도 의미를 모르는 경우 문해력(文解力)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까막눈처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와 도(道)

진리(眞理)는 "참된 도리, 이치"입니다.
어원적으로 '진리'(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는 '진실한, 진리를 사랑하는, 진리를 말하는, 참된, 진실된'이라는 뜻의 '알레데스'(ἀληθής)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적용적인 면에서는 "인간이 마땅히 가야하는 길, 생명의 길"을 의미합니다.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했다.
“아침에 도를 듣고(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가 말하는 <도>는 인간의 참된 본분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자연철학의 대가였던 노자(老子)는《도덕경(道德經)》제1장 첫머리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 했다.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만물의 근원, 시원'이다. 서양으로 하면 "창조(자)"이다.
‘도(道)는 영원에서 보면 무(無)이고, 피조세계 곧 유한세계에서는 유(有)'이다.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도는 정의 할 수 없고,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진리'(אמת)

  * 히브리어 글자는 <우에서 좌>로 씁니다. , 히브리어 알파벳 세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에메트’(א)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렙’(א)과 중간 글자인 ‘멤’(מ)과 마지막 글자인 ‘타우’(ת)의 세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관통한다(처음처럼 끝까지, 변함없고, 한결같음)는 의미가 있습니다.
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절대 진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 있는 진리들은 대부분 보편적인 것입니다. 때로 상대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는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변함없으시고 한결같은 하나님처럼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여호수아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처럼 진리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형통한 길로 인도합니다.

 

멤은 מ 물 (생명. 말씀)

중간 글자인 ‘멤’(מ)은 앞의(알파벳), 정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첫 글자인 ‘알렙’(א)과 뒷 글자인 ‘타우’(ת)의 (알파벳 마지막) 
‘에메트’에서 ‘알렙’(א)이 빠지만 ‘מת’(모트)가 되는데 몸통과 꼬리만 남게 되는데, 그 뜻은 "죽음"입니다.

머리가 없으니 죽음입니다. 

머리이신 ‘알렙’(א) 하나님이 빠지도 나니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허무하게 죽음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인생은 어찌 될까?
목자 없는 양은 그냥 죽음 그 자체이지요.
‘에메트’에서 마지막 글자인 ‘타우’(ת)를 빼면 어떻게 될까요?

 

‘타우’(ת)는 결론입니다. 최종적인 것입니다. 완결되고 완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완결성을 갖습니다.

‘토라’(תּוֹרָה)는 '율법, 교훈, 규범, 가르침' 등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기준이 되는 토라(율법)가 없다면  ‘אמ’만 남게 된다.

 ‘אמ’ (암)은 ‘만일’(if)이라는 뜻이다.
결론이 없으니 확정할 수 없고, 가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직 모르게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삶에 "하나님의 말씀 즉, 토라"가 없다면 삶의 기준, 중심을 잃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요동칠 것입니다.

중간에 글자인 ‘멤’(מ)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똑바로"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멤’(מ)이 없으면 'את'(에트)는 해석불가능한 <불변사>가 되고 맙니다.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우리도 만일 예수님이 자기 죽음의 의미를 미리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보냄을 받으신 인자 곧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또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실 가르침을 예수는 대언하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으로 대언자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가 하신 말씀이 성취되므로, 그가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었고, 확실하게 검증이 되었습니다. 

 

진리의 멍에는 율법의 짐을 가볍게 한다.

진리이신 예수는 우리에게 율법과 죄의 짐을 벗겨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메는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서 멍에는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지,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쉽습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율법에 규정된 요구, 의무, 책임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죄의 짐과 율법의 짐을 을 벗겨 주시고 쉬게 하십니다.
율법을 모두 사람을 얽매이기 위한 족쇄처럼 생가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알아야 죄를 피할 수 있듯이 율법이 그러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율법

사랑의 법을 실현하는 "멍에"이기에 행복합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므로 가벼워집니다.
할렐루야! 승리하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