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irbJr24uA?si=f-5LMIa8sy6wcwt2
고 노무현 대통형의 연설에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창에서 입을 맞추어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해방되는 해에 실명을 하셔서 앞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는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서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론 국유화 과거에도 생각해 본 일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습니다.
어느 언론사를 대통령이 폐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 해본 일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국위와 폐간 어떤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감히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모략해선 안 됩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제게 언론사 소유 지분 제한의 견해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해 왔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을 권력으로써 어떻게 흔들 생각도 없지만, 그러나 언론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제게 힘을 주십시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
1921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서 태어났다. 밀양공립농잠학교 졸업, 일제강점기 말기에 창원군 진전면 서기로 근무.
실명
8.15 광복 후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했다. 막걸리 도수를 높이려고 메탄올을 넣어 친구와 마시다가 친구는 사망, 본인은 실명했다고.
6.25 전쟁 시기에는 경남 창원군 로동당 부위원장, 반동 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사원. 이때 양민학살에 가담하여 적어도 11명의 무고한 양민을 죽이는 데 가담하였다고 한다.
당시 권오석은 반동분자, 즉 즉결처분할 대상을 골라내는 임무를 맡았는데 눈이 먼 권오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서 손을 만져 보고 처형 대상을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살 현장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신동아 보도 기사)
사망까지 과정
이로 인해 체포되어 수감되어 폐결핵 등 질병이 도짐, 1956년 집행정지로 5년 동안 출감, 1961년 다시 수감 10년 동안 마산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71년 옥중에서 사망. 사망할 때까지 전향하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
노무현은 권양숙과 1973년 결혼, 노무현의 사법시험 준비를 뒷바라지했다. 노무현은 권양숙의 도움을 받고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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