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白凡逸志)는 김구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당대 3대 명문장가 중 하나인 춘원 이광수의 손에 의해 화려한 글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백범일지는 10여 본이 중간(重刊)되어 여러 종류가 있는데, 국사원본은 이광수가 윤문한 1947년 책을 말한다. 백범일지는 명문장가인 이광수의 윤문(潤文,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의 과정을 통해 꽃단장하고 재탄생했다.
오로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집필한 것으로 치하포 사건 같은 왜곡, 과장 등이 있어 서로 맞지 않는 착오가 있다.
1919년 당시 김구(43세)는 이광수(27세)를 '옛 동지'로 생각하고 악수했다. 이 친분은 해방 뒤 이광수에게 요긴하게 활용됐다.
김구가 직접 저술한 원본 『백범일지』와 이광수가 윤문하여 완성한 『백범일지』의 관계를 논의한 것이다. 두 판본을 비교해 보면 이광수는 김구의 본래의 『백범일지』 원고 내용을 상당 부분 변개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구와 이광수는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에서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김구의 황해도 안악 교육운동 과정에서부터 인연이 있었고, 이 두 사람은 모두 안창호의 사상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이광수는 김구의 본래의 『백범일지』 원고를 자전적인 소설을 창작했던 자신의 수완을 발휘하여 소설적인 구성을 덧보탠 것으로 나타난다(방민호,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332089)
김구의 <백범일지> 부록으로 실린 '나의 소원'에 춘원 이광수의 이념과 일본 메이지 시대 유행한 '아름다운 나라'라는 개념이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 중).
‘나의 소원’을 백범이 썼을까? 학계의 중론은 아니라는 쪽으로 모인다. 그럼 누굴까? 정설은 한 명을 지목한다. 바로 ‘친일파’ 이광수(1892~1950)다.
논란은 ‘나의 소원’을 넘어 〈백범일지〉 자체의 저자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백범일지〉가 원래는 국한문혼용체로 쓴 친필 원고여서 읽기 쉬운 문장으로 옮기면서 윤문을 맡았던 이광수에 의해 꽃단장하고 다시 태어났다면 어디 까지인가? 윤문에 그쳤는지, 내용까지 고쳤는지, 고쳤다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논란이 더 있다.
상식적으로는 이광수가 윤문을 했어도다고 김구가 이를 읽고 인정했다면, 얼마나 꼼꼼히 살펴 봤을까? 훗날 김구 아들이 윤문에 대해 밝혔지만, 도진순은 “이광수에 의한 악의적 왜곡은 거의 없다”라고 말하지만, 여러 논란들은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김구가 썼다는 ‘나의 소원’의 문장들은 지나치게 눈부시고 아름답기 까지 하다는 것이.....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030
그러면서 마지막에 "단군기원 사천이백팔십년 십일월 십오일 개천절"이라 쓰여 있다.
김구는 왜 그랬을까?
어찌되었건 간에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책이 되었다.
《백범일지》(白凡逸志)는 어떤 책인가?
이광수애 의해 조작되고 왜곡과 오류는 아닐까? 그래서 민족 지도자로 탄생시켰다면 이는 후대를 기만한 역사 조작이고, 이를 수용한 백범 또한 만들어진 영웅이 아니겠는가.
그토록 일제와 싸웠다고 하는 영웅마저 친일파의 손을 빌렸으니 입이 열이어도 할 말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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