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8V3bm8ioGM?si=WDS9loMKanSqgfEQ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저 멀리 고즈넉한 고향 하늘
산에서 흘러내린 이슬을 머금은 들판
올해도 넉넉함으로 보답해 준다.
고향을 떠난지 어느덧 사십 년
고향을 떠난 것은 이십 대 초반이었다.
초등학교는 6년 동안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비바람과 눈보라,
봄가을은 온 산이 꽃대궐과 알록달록 단풍으로
수채화 그 자체였다.
커다란 산을 넘고 저수지를 돌아 걸어서 다녔다.
중학교는 이 십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언제나 경부선 철길을 넘을 때마다
정겹던 기찻소리 삐~익 삑~ 삑,
건널목에서 기관사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건넨다.
비포장 신작로 왕복 사 십리길,
그때는 고단하고 힘들었으나
그 시절 자전거로 올림픽 경기를 하듯
버스와 경쟁을 한다.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버스,
그때 운동이 나를 평생 건강하게 지나게 해 주고 있다.
고등학교는 사십 리가 조금 넘어 버스 통학하다가 1년은 자취를 하게 되었다.
학교 근처에서, 그리고 대전에서....
유성에서 84년부터 대학을 다녔다.
벌써 고향을 떠나 40년이 지났다.
대학을 마치고 상경하여 30년을 여기저기
9번을 이사하면서 나그네처럼 살아왔다.
추석명절 고향에 내려오니 정겹다.
어머니가 계시는 곳은 읍내 아파트
20년 전부터 살고 계신다.
거실 소파에 앉으면
저 멀리 고향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년 날씨는 여름이 두 달은 더 긴 것 같다.
추석 전날이지만, 오늘은 고구마를 캐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순식간에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옷을 적신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일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형제들이 있고, 어머니가 계시니 나는 행복하다.
아흔이 되신 어머니와 저녁에 해물 칼국수와 보쌈으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행복해'라며 웃으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엔 백세는 보장되어 있다.
어머니는 내 생애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배우게 해 준 마음의 고향이다.
내일 아침, 그렇게 고향하늘 아래서 형제들과 추석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