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아픔, 상처 그리고 비밀' 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것이 있다. 그것이 드러나면 '편견'이 생기고, 상처를 받게 된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자신과는 산관없이 생긴 뼈가 시리도록 아픈 상처이다. 편견이 아닌 눈으로 보아줘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일단, 무조건 색안경이 있다.
송명희 시인이 그런 모습에 대해 이렇게 시를 썼다.
똑바로 보고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싶어요 주님
곁눈질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송명희 시인은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다.
하지만 신앙으로 장애를 딛고 1985년 첫 저서를 출판한 이후 2002년까지 28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1995년 기독교 최우수 도서 저작상과 1992년 한국 복음성가 작사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기독신문에 11년 동안 칼럼을 연재했다. 국내와 미국 등 간증집회를 다녔으나 1998년 무리한 활동으로 전신마비가 와서 모든 사역을 중단했다.
2005년 이후 소설 『표』, 『아사셀』을 출판했으며, 지난 2006년에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출판했다.
송 시인은 그가 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1963년, 어느 초여름 나는 태어났다."며 "어머니의 양수가 터져 아홉 달만에 세상에 나온 나는 여물지 못한 계란처럼 힘없이 살다가 생후 일주일쯤 지난 하루 저녁 동안 숨이 멈추었다."고 했다.
이어 "자유롭지 못한 몸과 가난한 집안 살림에, 여러 가지 억누르는 환경들이 나를 날마다 서글프게 했지만, 그 속에서 17세의 방황과 셀레던 가슴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사는 목표를 가졌다."고 했다.
또한 "초등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한 나에게 하나님은 시를 불러 주셨다."며
"그리고 1985년 매스컴을 통해 나는 세상에 알려졌고, 저서 25권을 써 '하늘의 시인'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무리한 활동으로 목 디스크를 얻어 전신마비가 되었고, 온 몸의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송명희 시인의 시 <그 이름>)
고 김명혁 목사도 자신의 생애를 고백했다. “부족한 저도 열한 살 때 사랑하는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 남쪽으로 와서 고아와 나그네로 살아오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감사와 고마움과 기쁨을 몸에 지니고 살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아픈 것도 감사합니다.
아파서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없어져 주변을 더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병이 길고 깊으면 살고 싶은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감사합니다.
삶에 애착이 없어서 비굴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마음이 세상에 없으니 세상보다 천국을 보고 땅에 연연하기보다 하늘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의사들이 죽는다고 하는 말을 수십 번 들어 별로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병원 믿고 살았으면 벌써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살면 기회고 죽으면 천국이라 감사합니다. 코로나 온 것 같은데 나아가고 있습니다.”
송명희 시 <빈들에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는 빈들에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외롭고 쓸쓸한 빈들에서
누가 우리를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그렇게도 풍성했던 들녘은
과거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지난 과거의 추억이
우리를 더욱 힘들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를 보지 말게 하소서
현실의 빈들에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주옵소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빈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버텨나갈 수 없나이다
외롭고 힘든 우리에게 함께 하소서
길고도 추운 겨울을 힘겹게 지낼
외로운 사람들을 품에 안아주시고
감싸 주시옵소서
그래서 얼어붙은 그늘진 곳이 없게 하소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아픔, 상처, 고독, 비참함이 있다해도 그것이 비극일 수는 없다. 누구나 가슴시리는 아픔이 있어도 세상을 살아낼 힘은 하늘로부터 임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신조어를 접하개 된다. 그 가운데, 고밍아웃(= 고아+커밍아웃)이 있다.
보육원이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처럼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 종료되는 열여덟, 이제부터는 성인으로 인정되어 독립해야 한다.
아무도 사회적으로 자신을 돌봐줄, 관계도 맺지 못한 채 홀로 떨어진 기러기처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알마나 많은 시간들을 좌충우돌하면서 성장해 가야 하는 것인가?
열여덟,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니다. 누군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기댈 곳이 없을 때...
그는 언젠가 자신을 밝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드디어 자신을 밝혀야 할 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으나 자식이 "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큰 아빠, 고모, 이모가 없는거야?"라고 물을 때가 오면 가장 가픈 사연을 끄집어 내야하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다.
‘고밍아웃’은 사회적 낙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신조어다.
결혼을 할 때 부모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울고, 이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야하는가?
처음부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면 과연 이해하고 받아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향,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재빨리 말을 대충 얼버무리거나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래서 입에 거짓말이 시작되어 시나리오를 만들어 다른 거짓말을 사실처럼 말하게 된다. 모든 하는 말이 가짜이다. 가족이야기, 성장이야기, 홀로 있게 된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하면서 들키면 어쩌나 식은 땀이 흐른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어쩔 수 없이 고밍아웃을 한다.
“나 고아원(○○○)에서 자랐어.”
이 한 마디를 꺼내어 진실을 말하던 그 날,
그에게는 어떤 상황들이 벌어졌을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