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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습관이고 친절은 버릇이다

하하하, 웃으시는 하나님
'웃으면 복이와요'는 대한민국의 문화방송에서 방송됐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그가 만든 '웃으면 복이와요'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설이 되었으며, 1985년까지 무려 16년간 방송되었다.
90년대 중반 강사로 모시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어머니와 같은 연배라서 대화가 참 편했다. 머리가 벗겨진 노신사, 그의 웃음은 일품이고 매력이었다. 그는 1935년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산욕열로 숨을 거두었고 한다. 한참 어리광 부리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던 어린시절을 술로 소일하던 아버지 슬하에서 굶기를 밥 먹듯 힘들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지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삶의 보람과 희망을 찾게 된다. 그가 고난의 세월을 보낸 이야기는 눈물을 흘렸고,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에서 얻었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1969년 개국한 MBC TV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PD 타이틀》로 일하게 되면서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까를 고민한다. 제목을 뭐라고 해야할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웃고 살도록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웃으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세기 21:6)”라는 표현처럼 하나님께서 사라를 웃게 하셨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신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세상, "웃으면서 산다면 복이 온다." 올마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말인가!
김경태는 당시 이름난 희극배우인 구봉서, 배삼룡과 지방 유랑극단에서 활동하던 이기동, 송해, 서영춘 등의 코미디언들을 끌어들여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웃으면 복이와요"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설이 되었으며, 1985년까지 무려 16년간 방송되었다.
김경태는 말한다. 이렇게 장수 프로그램이 된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아침마당 | 이경애가 북청물장수 역을 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유머1번지 출연 시절"넌 내꺼야~"유행어로 인기 얻었을 때였다고 한다!
https://youtu.be/jSOdo4rvrzY?si=XtBA0ImHflW9hzlP

개그우먼 이경애 집사 "제 유행어는 모두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새롭게하소서' 출연해 신앙 간증과 함께 감춰 놓은 개인사 밝혀
'넌 내꺼야 임마', '너는 내 밥이야' 등의 유행어와 재치 있는 입담, 그리고 푸근한 이미지로 8~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개그우먼 이경애 집사. 언제나 유쾌한 모습이었던 그녀가 오는 9일(수) CBS TV '새롭게하소서'(연출 황희철PD)에 출연, 신앙 간증과 함께 그동안의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다.

가난을 이기고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경애 집사는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미뤄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학교에서 공부할 시기에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그녀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스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연예계 데뷔 이유를 설명했다.

"재주는 없지만 스타가 돼 돈을 많이 벌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연기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독학으로 팔도 사투리 연습, 아나운서 연습을 했어요."

이후 그녀는 어렵게 중학교에 진학해 연극반, 방송반, 웅변반의 리더로 활동하며 연예인이 될 준비를 했고, 마침내 1984년 KBS 제 2회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방송에 데뷔하게 된다.

"개그맨 시험을 볼 때 이북 사투리로 '인민군 노래자랑'이란 코너를 준비했었죠. 당시에는 '인민'이라는 말도 쓸 수조차 없었을 때였는데 말이죠. 나중에 들으니 담당 PD가 시말서를 쓸 생각하고 저를 내보내줬던 것이라고 합니다."

데뷔 초 '여자 찰리 채플린'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개그우먼 이경애. 그러나 그녀는 개그맨 데뷔 3년 만에 방송국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데뷔하고 3년 지나니까 방송국 사람들이 '대상으로 뽑아놨는데 별로 능력이 없는 거 같다,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 등등'의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 무대에 설 기회를 잃게 됐죠."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방송국에서 퇴출당할 무렵 이경애 집사에게 급성신부전이라는 또다른 시련이 닥쳤다. 양쪽 신장이 모두 썩어서 수술을 해야 했지만, 검사 비용도 없어 빚을 져야 했던 상황. 수술도 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된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믿지 않았었는데, 절망의 끝자락에 서게 되니 그 사실을 가슴으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2~3시간을 엎드려 울면서 회개기도를 했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빌린 돈 갚지 않은 것까지..."

이경애 집사는 "그렇게 몇날 며칠을 기도하는 가운데 질병도 기적적으로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털어 놓았다.

"유서까지 써놓은 상황이었어요. '하나님 저 죽는대요. 신장이 아파서요...'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경애야, 경애야, 경애야'하며 누가 저를 세 번을 부르는 거예요. 누구냐고 물어보니 '내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더니 제 신장을 비추기 시작했죠. 제가 치료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셈이죠." "제 유행어는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후 이경애 집사는 다시 방송에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넌 내꺼야 임마', '너는 내 밥이야' 등 많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그녀는 "그동안의 유행어들은 모두 하나님께 주신 아이디어였다"고 고백하며 눈길을 모았다.

"방송에 복귀하고 나서 어떤 유행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지 감이 잘 안왔습니다. 답이 나오지 않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그 구절을 바탕으로 '넌 내꺼야'라는 말을 만들어 방송에서 써봤더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 유행시켰던 '너는 내 밥이야'라는 말도 역시 하나님의 아이디어였고요. 기도하는 가운데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민수기 14장 9절)'는 성경 구절이 생각나 그 구절을 바탕으로 방송에 활용한 것입니다."
그가 발굴해 낸 신인과 스타들이 많았다.

웃으면 복이와요 이후 아나운서 변웅전의 예능감을 알아보고 그를 "유쾌한 청백전" MC로 발탁하여 당대 최고의 사회자로 스타덤에 올렸놓았다. 시청자들은 TV 앞에 앉아 웃게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시트콤 "부부만세"를 연출하여 두 프로그램이 번갈아서 시청률 1위와 2위에 오르면서 한국 코미디 《프로듀서의 귀재》로 평가 받았다.

1973년 친정인 TBC의 스카웃 제의로 복귀하였고, 김경태를 따라서 MBC에서 이적한 서영춘, 배일집, 배연정 등의 코미디언과 "좋았군 좋았어", 고전 유머극장 등을 연출했다.

1980년에는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을 연출했는데, 이 때 변두리 3류 극장을 떠돌던 이주일을 송해의 추천으로 출연시켜 단 2주 만에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김경태는 코미디계의 전설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호사를 누렸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