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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과 한자

한자가 만들어진 유래
한비자나 여씨춘추와 같은 책을 보면, 한자는 창힐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漢字)가 갑골문(甲骨文)으로부터 왔고, 따라서 갑골문(甲骨文)을 만든 사람들이 한자(漢字)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러면 그 갑골문자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동이족’이란 말은 “중국 대륙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중심에 두고, 동쪽에 사는 중국의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을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이 말은 한족이 아닌 이방민족을 동쪽에 사는 민족(나라)을 ‘동이(東夷)’라 불렀다. 한나라 이전에는 한족이 아닌 중국 동쪽에 사는 중국의 다른 민족을 뜻하는 말이었다. 중국은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은 모두 오랑캐라 불렀다.
중국 역사에서 일컫는 오랑캐는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구분하여서 동이(東夷)· 서융(戎狄)·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사이(四夷)'와 같이 이(夷)는 오랑캐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였다.
한나라 이후 동이는 만주, 한반도, 일본 등 중국의 동쪽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부르는 말로 바뀌었다.
오늘날 한민족(韓民族) 원류를 형성하는 부여, 고구려, 백제, 예맥, 삼한 등이 동이로 불렸으며, 말갈, 선비, 오환, 왜 등도 동이로 불렸다.

한자는 바로 동이족이 만든 글자이다.
한자를 한(漢)족이 아니라 동이(東夷)족이 만들었다는 진태하 교수의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작가 김진명은 그의 작품 <글자전쟁>은 '혹시 한자는 우리 글자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畓은 '논 답'이라는 한자로, 벼를 심는 논(물이 있는 밭)을 의미한다.
水(물 수)와 田(밭 전)이 결합한 회의자인데, 중국에는 없고 한국에서 만든 국자이다.
왜 중국은 없을까?
그들이 글자를 만든 민족이 아니라는 증거다.
한국에서는 6세기 중엽에 세운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도 등장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수전(水田)이란 단어를 한때 쓰긴 했어도, 두 글자를 하나로 합친 답(畓) 자는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든 한자 중에선 유일하게 교육용 한자에 등록되었다.
개간답(開墾畓), 전답(田畓), 천수답(天水畓)
소설가 김진명이 2015년 출간한 한자에 대한 유사사학 장편소설이다.[1] 내용의 핵심은 "한자는 갑골문자 때부터 우리 조상인 동이(東夷)족의 문자이다. 그 근거로는 畓, 弔자가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쓰인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만 쓰는 한자(돌(乭)자 같은)가 있다.

한자의 기원
한자의 기원은 갑골문자이다. 은(殷)나라 때 탄생했고, 은나라는 한족이 아닌 동이(東夷)족의 나라이다. 그러면 당연히 동이족 후손 우리는 한자가 우리 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논어 자한 13편에는 공자가 구이(九夷 : 아홉 오랑캐의 땅, 東夷와 같은 말)에 살고 싶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거기는 누추한 곳이라고 하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 곳이 어찌 누추하겠는가'(子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합니다. 도대체 아홉 오랑캐가 사는 곳, 구이(九夷)가 어디길래 당대의 지성인 공자가 일부러 가서 살고 싶어 했을까요? 주희는 논어 집주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줍니다. 동쪽에 아홉 부족이 사는 땅에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거길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東方之夷有九種. 欲居之者, 亦乘桴浮海之意.)
동방의 아홉 부족의 오랑캐, 즉 부족 연맹체인 동이족이 사는 곳은 바로 고조선입니다.
훗날 주자는 동이족이 사는 곳은 원래 도가 없어 누추하지만, 공자가 가면 방유도(邦有道) 한다고 억지로 해석했다.

천하를 제패한 동이족
https://m.khan.co.kr/article/200802011714535
사기에 나오는 은(殷)은 본래 상(商)나라이다. 최근 중국학계와 정부는 ‘하상주 단대(斷代) 공정’에 따라 상나라의 연대를 확정했다. 즉 BC 1600년에 성탕(成湯)이라는 영웅이 하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으며, BC 1300년에 은으로 천도한 뒤 BC 1046년 주(紂)임금 때 주(周) 무왕에 의해 멸망했다. 은이라는 나라 명은 상왕조의 마지막 도읍 명칭인데, 주나라 사람들이 은으로 낮춰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상나라의 실체를 알면 더욱 확실해진다. 하·상·주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다. 지금의 개념대로라면 동이족이 한족(漢族)과 처절한 중원쟁탈전을 벌인 끝에 하나라를 무찌르고 550년 가까이 천하를 통일했다. 그것이 바로 상나라이다. 그런 상나라를 다시 중원의 종족(한족·漢族)이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후 중국의 역사는 줄곧 한족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수수께끼의 열쇠

“이로써 상나라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지. 상나라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거나 큰 일을 치를 때는 그 길흉을 점쳤다는 것과, 신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신권과 왕권의 복합왕국이었다는 것까지….”(이형구 교수)
그렇다면 상나라 문화와 동이족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상나라가 차하이·싱룽와 문화(BC 6000~BC 5000년)-훙산문화(BC 4500~BC 3000년)-샤자뎬 하층문화(BC 2000~BC 1500년·고조선의 문화로 여겨짐)의 찬란한 발해문명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보았다. BC 1600년 무렵 발해문명의 일파가 남하하여 중원 하나라를 쓸어버린 뒤 천하를 통일한 나라가 상나라라고….

글자로 쓰이는 한자

“문(文)은 본래 ‘무늬’의 뜻이고, 자(字)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다’는 뜻으로 만든 겁니다.

한자를 만든 사람들은 정인들이다.
한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중국 본토에서는 이 문자 체계를 그냥 '자(字)'라고 불렀다.
한자와 중국어는 엄연히 다르다.
한자를 보고 중국어라고 하는 것은 문자와 언어를 구분하지 않아 발생하는 오인이다. 중국어는 언어이며,
한자는 한글, 라틴 문자, 가나처럼 쓰고 적는 문자이다.
'한문'은 '한자'라는 문자를 이용해 쓴 언어이다. 즉 '學'이나 '習' 같은 것은 한자이고,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같은 것은 한문이다.


공자는 '열을 미루어 하나를 더하는 것이 선비다(推十合一爲士)'라고 풀이했고, 설문해자에서는 '수는 하나에서 시작해서 열에서 끝난다(數始於一, 終於十)'고 하여 一과 十로 이루어진 회의자로 보았지만, 갑골문을 보면 병기(도끼)의 상형으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서는 병사가 본뜻이다.

선비가 하는 일'의 시초란 뜻이 됨. '하나를 배워 열을 알다' 라는 뜻으로 선비사. 그래서 벼슬에 나아가 일하는 사람,의 뜻도 됨.
士의 자형을 두고 어떤 사람은 도구를, 어떤 사람은 단정히 앉은 법관의 모습을 그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牛(소 우)와 士가 결합된 牡(수컷 모)가 소와 생식기를 그린 것을 보면 士는 남성의 생식기임에 분명하며, 이로부터 남성을, 나아가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壯(씩씩할 장)은 강인한 ‘남성’을, 壻(사위 서)는 ‘사위’를 뜻하며, 吉(길할 길)은 집 입구(口·구)에 설치한 남성 숭배물(士)로부터 ‘길하다’는 뜻을 그렸다.

하지만 壺(병 호)와 壹(한 일)은 사실 士와는 관계없는 글자다. 壺와 壹의 士는 원래 호리병의 뚜껑을 그린 것인데 예서로 오면서 잘못 변했다. 壺는 잘록한 목과 볼록한 배와 두루마리 발에 뚜껑을 가진 호리병을 그린 상형자이며, 호리병은 호리병박을 본떠 만들었다.

壹은 소전체에서 壺와 吉로 구성되었는데, 壹은 단순한 숫자 ‘하나’를 넘어서 만물 창조의 근원인 元氣(원기)는 물론 최고의 개념인 道(도)까지 뜻하는 심오한 글자다.

壺가 어떤 상징이기에 壹의 의미부가 되었을까? 호리병박은 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신화에서 인류가 탄생하는 대상물이자 대홍수 시절 여와와 복희 남매를 살아남게 만든 매개물이기도 하다. 나중에 여와와 복희가 결합하여 중국 민족이 시작된다.

그래서 호리병박은 생명 탄생의 상징이며, 그 때문에 중국 서남부의 이족, 라후족 등 소수민족들은 아직도 호리병박을 숭배대상으로, 자신들의 표지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앙소 문화유적지에서는 호리병의 아가리에다 사람 얼굴을 빚어 놓은 특이한 형태의 人面壺(인면호)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호리병박에서 인류가 탄생했다는 신화적 사유를 형상적으로 그려낸 조형물이다.


그렇다면 호리병박의 속은 음양이 아직 구분되지 않은 혼동의 상태를 상징하며, 그것이 둘로 나뉘어 만물을 낳는다는 만물의 생성 이론과도 통한다. 특히 吉이 남성 숭배를 뜻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이것이 최고의 상징을 가지는 一(한 일)의 다른 모습인 壹을 만들면서 壺를 의미부로 吉을 소리부로 선택하게 한 이유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