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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이 밝힌 4.3 사건

1. 4.3 사건과 남로당
1-1. 4.3 사건 개괄
- 4.3사건의 산 중인이던 김영중 서장이 4.3 사건 관련 책 여러 권 내서 소개함
-  4.3 사건은 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음
-  4.3은 남로당이 일으켰지만, 실질적으로 조선공산당과 제주도당이 일으킨 것임
-  북한에서는 경찰과 대한민국 탄압이 4.3의 주요 의도라 주장함
-  좌파의 선전선동으로 인해, 4.3 사건을 북한의 경찰과 통일에 의한 민중항쟁으로 여기고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기도 함

1-2. 4.3 주동자들의 행태
-  4.3 사건 주도자 김달삼은 이승진임
-  4.3은 무장 폭력으로 반대하여 인명 피해를 입힌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반역행위로 봄
-  4.3 주동자들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고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해 앞장섬
-  4.3 주동자들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반역행위로 해석할 수 있음
- (중요) 4.3 사건 종료 시점은 1948년 4월 3일임

1-3. 4.3 사건과 통일에 대한 입장
-  남로당 강령에서 조선의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함
-  4.3 사건 이후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하지 않은 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닌 공산화 통일임
-  좌파는 통일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달아나감
-  통일 반대 주장의 진정한 의미는, 북한의 이론에 따르면 공산화 통일임


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 서장의 증언 정리
"레베데프 비망, 남로당 제주도당 지령서 분석"이라는 책을 출간
- 어린시절 중간 산간지역에 살다가 빨치산들이 출몰하여 '해안소개령'으로 애월리에 이주하여 잠시 살았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집을 짓고 마을의 성담을 쌓았다.  빨치산들 = 남로당들이 마을을 습격했기  밤마다 경계를 서고 그것을 감독하기 위해서 순찰도 돌고 했다.
제주 4.3은 누가 일으켰습니까?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켰다.
그건 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에 의해 일어난 사건 이다.  
남로당은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그리고 여운형이 조선인민당, 백남훈이 남조선신민당 곧 3당이 합당해서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이 되었다.
제주도에는 여운형의 당이나 백남훈의 당이 없었다. 유일하게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제주도당만 있었다.  

1947년 3.1운동기념투쟁 계획
4.3은 남로당이 일으켰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주도에서는 조선공산당 제주도당들이 일으켰다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다.
북한에서는 4.3이 경찰과 대한민국의 탄압에 의한 민중항쟁이다. 또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 저지를 위한 조국 통일운동이다. 이렇게 주장한다.
그게 얼핏 들으면 맞는 것 같죠.
또 역사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요즘 좌파의 《선전선동》에 따라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4.3을 일으켰던 남로당에서도 그렇게 말했고, 다음에 북한에서도 지금까지 지금까지 이런 주장을 합니다만 그 경찰과 서북청년단이 탄압이라고 한 것은 부분적으로 있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한 가지 명분에 지나지 않은 것이고....
그들이 기본 목표라고 하는 것은 남로당 강령 제2호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조선의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일으킨 폭동이고 반란이다. 그리고 통일 운동이었다. 아이 우리나라 사람 중에 통일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좌파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어떤 통일이냐 이렇게 물으면 좌파는 답변을 회피하거나 달아납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통일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공산화 통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남로당 강령
15개 조항이 되는데 그중에 <제2호에 보면은 조선의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아주 명기가 돼 있다.
남로당이 한 행위라고 하는 것은 하나로 열까지 전부 공산화 통일을 위한 즉 《김일성 노선에 따른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행동》이었다.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바는 없다. 오히려 해악을 끼쳤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봤을 때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것은 머리털 끝만큼도 없고 오히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그러한 폭동과 반란을 일으킨 그러한 죄악 밖의 남로당이 한 게 뭐가 있겠는가. 남로당이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남로당이 마을을 습격하는 경찰관사라든지 이런 데를 습격할 때도 조선인민공화국 만세도 불렀고, 적기가도 불렀고, 김일성 만세도 불렀고, 스타린을 명예의장으로도.
그런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통일한다는 게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니고 <공산화 통일>이라는 것은 거기에서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 4.3이라는 날짜 자체가 이게 또 상징적인 날짜 아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좌파들이 어떤 날을 택할 때는 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 박헌영이가 그 개입해서 공사단체 하나 만든 게 <화요회>라는 게 있다. 칼 막스가 태어난 생일날을 택해서 화요회라고 명명을 했다. 마찬가지로 제주 4.3도 레닌이 러시아에서 1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거든요. 취리히에서 있다 보니까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성공했다. 이런 말을 들어가지고 취리히에서 독일을 거치고 해 가지고 결국 러시아로 들어간 기념일이 4월 3일. 그래서 그날을 택해 가지고 4월 3일날 거사를 한 거다.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고 북한의 이른바 정부 창설에 기여했다. 4.3을 일으킨 주동자가 김달삼인데, 본명은 이승진이다.
김달삼은 4.3을 일으켜 놓고 8월 2일 제주도를 탈출하고 해주에 갔다. 그 해주대회는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라고 하는데 거기 가서 북조선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다.
초대 국회의원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 4.3 주동자 6명 그리고 4.3하고 관련은 없지만, 과거부터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3명, 그래서 제주도 출신 9명이 초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있을 때는 건국을 반대하고 북한에 가서는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해서 앞장선 것이다.
바로 그 4.3 주동자들이다.
4.3 주동자들의 행태는 반대한민국적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허기 위해 그 무장 폭력을 행사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4월 3일 당일만 하더래도 경찰과 10명을 포함해서 민간인 선거관리위원 심지어 14살, 10살 난 딸들도 무참하게 살해됐죠 그런 것으로 봐서 그들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반역행위였다.

1948년 4월 3일, 4.3사건
좌파에서는 4.3 사건은 47년 3월 1일 그때 여기서 3.1 발포 사건을 기잠으로 본다. 그것을 민중항쟁으로 만들기 위해서 4월 저 4.3을 1년 전에 발생한 3.1 사건까지로 소급한다.
3.1사건과 4.3은 별개의 사건  
4.3사건이 끝난 것은 54년 9월 21일 한라산을 개방하여 끝나게 된다.
한라산 개방한 54년 9월 21일 이후에도 진압 작전을 하다가 경찰관이 4명이나 전사했다. 마지막 전사한 분이 오원권이 체포한 때로부터 6개월 전인 56년 12월 30날 그렇게 전투하다가 사망했다. 4.3은 만 9년 동안 이렇게 진행이 됐다.
한라산 개방이라는 것은 이제 공비 대부분이 소탕됐으니까 산에 들어가도 좋다. 그전까지는 입산 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