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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것은

세상을 사노라면
우리는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누구나 각자마다 세계관을 가지고 한 생애를 살아갑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복합적으로 함유된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생득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그가 사회적 경험을 통해 습득한 것과 사유하고 결정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한 인간의 삶의 바탕에는 그가 살아가면서 사회적 활동에서 경험한 것과 외적으로 성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깨우친 것과 또는 사상, 철학, 종교, 오랜 전통 등에 의해 그의 삶이 결정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자신이 바라고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따라 한 생애를 살아갑니다.  
당신의 삶은 무엇에 이끌리며,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각자마다 사상과 종교, 신념에 따라 삶의 결과를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6:31-33 "공중 나는 새를 보라 길쌈 수고 안 해도, 곡식모아 창고에 들여놓지 않아도 매일매일 먹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걱정합니다. 좀 더 잘 입고 싶고, 좀 더 잘 먹고사는 집도 좀 더 나아지길 바라지요.
누구나 바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있으면 있는 대로 족하게 여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삶입니다.

오유지족, 있는 것으로도 만족하는 삶
오유지족(吾唯知足)은 한자로 나오(吾), 오직 유(唯), 알지(知), 족할 족(足)  '나 스스로 주어진 것에 만족함을 안다.'는 말입니다.
숙명이나 운명론이 아닙니다.
중국 고대 철학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지족자부(知足者富)’라고 했습니다.
누가 진정한 부자입니까?
“족함을 아는 자가 부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있어도 남 앞에 뽐내거나 우세를 떨고 자랑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없다고 해서 비굴하지도 않고, 주어진 환경에도 ‘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군 이래로 가장 잘 사는 환경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정도로 먹고 산다면 인류를 통틀어서 10% 안에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은 GDP 기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행복지수는 143개 나라 가운데 52위, OECD 32개국 중 3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세계 행복도 평균(73%)보다 16% 포인트나 낮은 수치입니다.
왜 이처럼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요?
주어진 환경에 대한 감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늘 등수로 사람을 세우는 학교 문화가 한몫을 합니다. 성적순이 행복순인 것처럼 세뇌당했습니다. 이는 남과 비교하는 비교의식으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누구와 비교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만이 느끼는 절대 행복에 대한 지수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인간이 산다는 것, 진정한 부자는 오유지족의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나를 찾아가게 합니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스스로 물으라.  
나도 알고 있고, 남도 알고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나, 남은 모르는 나
나도 나를 모르고, 남이 아는 나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
묻고, 묻고, 또 물으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나를 찾게 될 때까지.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처럼 "나는 생각(思惟)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생각(사고, 사유)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120세를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의 기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이해>가 있는데, 그 이해는 다양하게 분포(skewness)합니다.

성경 자체는 그러하지 않은데, 사람들은 왜곡해서 해석하고, 아전인수로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즉, <신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동물들처럼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보다 먼저 지음 받은 짐승은 본능으로 살게 지으셨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선언인지요.
다윗도 시편 8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지으셨는데 왜 인간은 행복하지 못할까요?
우리를 지으실 때부터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신이 인간을 속박하고, 매여있는 노예적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의 행태(잘못된 신앙)를 보면서 그들의 눈에는 비정산적인 집단처럼 보입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 철학자였던 니체는 매우 신랄(辛辣)하게 공격하며 무너져야 하고, 또 새로운 사상이 새워쟈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신이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 안에 신 존재의식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신이 없다면 우주는 우연히 탄생했고, 우연히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우연히 온 우주 속에 한 생물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뛰어남은 진화된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창 1:26)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그가 주시는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자신의 잃어버린 《본래의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형상이란 모양입니다. 모양은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것, 무엇을 닮은 것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나를 아는 지식이요, 나를 아는 지식은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과학적 지식이 아닙니다. 본질을 아는 신학적 지식입니다.
우리를 설명하려면 외부적으로는 환경과 비교하고, 내부적으로는 부모와 조상을 통해 나를 알아갑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를 찾아가는 삶이요, 나의 삶의 목적을 향해가는 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발견합니다.
삶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 말씀은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황금률입니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主)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誡命)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誡命)이 온 율법(律法)과 선지자(先知者)의 강령(綱領)이니라(마 22:37-40)

이 《두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두 계명은 순환론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진정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흘러갑니다.
그 사람은 한마디로 사랑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요, 능력입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우리나라의 최고의 지성 중 한 분이던 이어령 박사,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의 인생관과 인간관은 깊은 사유와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인간 존재의 의미, 삶의 가치, 그리고 지식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인생관
이어령 박사는 인생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는 학습과 성장의 과정으로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강조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식을 탐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인생의 목적을 '자아실현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았습니다.
이어령 박사는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발전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인간관
이어령 박사의 인간관은 깊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는 인간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각자 고유한 경험과 사유를 가진 복합적인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그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중요시하게 만든 이유입니다. 그는 "인간은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어령 박사는 인간의 삶에서 실패와 고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어령 박사의 인생관과 인간관은 그의 독창적인 사유와 깊은 통찰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는 인생을 배움의 연속으로 보고, 인간의 존재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며, 실패와 고난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그의 지혜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의 그의 저서 중《지성에서 영성으로》 《생명이 자본이다》《마지막 수업》등이 그의 신앙과 세계관을 잘 보여줍니다.
1. 《지성에서 영성으로》: 지성과 신앙(영성)의 통합
이어령 박사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느낀 사유의 기록입니다. 그는 인간이 지성의 한계는 무엇인가? 왜 신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가? 그 여정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인 사고의 확장임을 강조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성의 논리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선 신비와 영적인 통찰을 포함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믿음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말씀"이 곧 생명이며, 모든 피조물의 근원임을 깨닫고 이를 지적 탐구와 연결지으려 했다.

2.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 중심의 기독교적 시각
이어령 박사가 《생명(영원)》에 대한 기독교적 통찰을 나눕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곧 물질과 경제 중심의 세상에서 생명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하며, 기독교의 생명 신학을 통해 이를 비판합니다.
기독교는 생명(하나님의 생명, 영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본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증명한다.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언에 있다. 이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관계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을 강조하며, 그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임을 역설한다.
3. 《마지막 수업》: 죽음 앞에서의 신앙 고백
이어령 박사의 암 투병 중 쓴 글이다. 그의 신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서 체험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토록 철저한 무신론자요, 인문학자였던 그가 죽음 앞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의 시작》이라는 기독교의 소망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한다. 그는 삶의 의미와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품에러 여행을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은 이생에서는 마지막이요 끝자락이지만, 하나님 안영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1. 하나님 중심성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며, 인간은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2. 생명과 말씀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유지하고 구원하는 힘이다.
3. 죽음과 영생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이어령 박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평안을 얻었다.
4. 화해와 통합
기독교 세계관은 이성과 영성, 생명과 죽음,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어령 박사의 기독교 세계관은 단순히 신앙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통찰과 철학적 사고를 결합하여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