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은 우리의 삶의 일상에서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아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친근한 것들을 시의 소재로 삼는다.
그래서 그의 관찰력과 통찰을 통해 곱게 빚어 소반(小盤)에 가득 담아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지혜) 중에서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행복을 주는 다른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3가지 때 - 돌아갈 때, 힘들 때, 외로울 때》라는 관점에서 행복에로 가는 통로로 제시했다.
먼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치고 피곤하고 몸을 이끌고 돌아가야 할 그 때, 빈집이 아니라 가족이 있는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얘기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긴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쉼과 휴식, 그리고 가족과 함께할 대화의 시간을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날 사랑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입가에 미소짓게 하고 힘을 주는 기억들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라도 나 자신에게 불러 줄 노래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태주 시인은 왜 행복의 조건으로 ‘노래’를 꼽았을까?
그것도 외롭다고 느낄 때 혼자서 부를 노래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것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노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누구에 보여줄 필요도 없다. 엄마가 아기에게 불러 주던 자장가처럼, 자신이 자신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외롭지 않게 해준다.
당신은 외로울 때 어떤 노래가 입가에 맴도는지요?
아마도 우리에게 노래가 없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성으로 풀어낼 수 없는 마음 안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경험과 감동, 희노애락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노래는 희노애락의 감정들을 모두 담아내고 언제든 표출할 수 있고 비용을 지불할 필요없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안겨 준다.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소품’에서는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을, ‘부록’에서는 인생과 관련된 여러 유익한 글들이 있다.
두 부분은 알기 쉽게 ‘행복론’과 ‘인생론’이라 칭했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쇼펜하우어의 생활 철학을 담은 행복의 기술과 인생 조언에 대해 살펴보자.
제1부 행복론
그는 "행복한 생활"을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지침을 ‘행복론’이라고 정의했다. 기성의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논의<서구적인 것> 에서 탈피하여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을 중심<실용주의>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첫째, 인간을 이루는 것(인격)
이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격'을 말한다.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가 포함된다.
둘째,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소유)
즉 재산과 소유물을 의미한다.
셋째,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명예)
그것은 명예, 지위, 명성으로 나누어진다.
제2부 인생론
사람의 참된 본질, 생존의 허망함, 세상의 고뇌, 자살, 삶에의 의지, 종교, 박식함과 학자, 독자적 사고, 독서와 책, 여성, 교육 등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쇼펜하우어 철학이 마침내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중심이 되었고, 철학과 정신분석,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은 영감을 주었다. 니체와 프로이트, 채플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 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가 가르친 것은 지나갔으나
그가 살았던 것은 남으리라.
이 사람을 보라!
그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노라!”
(니체의 응답 시, 1888)
* 참고
서양에서는 일찍이 14~17세기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18세기 시민혁명,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봉건제와 왕권군주제가 무어지게 된다.
그들은 문예부흥으로 그리스-로마의 문명과 예술 등을 되살려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들은《개혁,변혁, 변화》를 추구하면서 그들이 가졌던 옛 것을 되찾는 경우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역기능으로는 역사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과거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터부시하며 거부하므로 정신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결국 그들이 찾아가야할 고향을 기억에서 지웠고, 돌아갈 배마저 불태우게 된다. 결국엔 그들의 빈 마음과 정신을 채워야할 것들을 찾게 된다. 결국 그들의 빈곳을 채워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들에게 없었던 동양종교와 철학사상이었다.
니체는 기독교 사상을 배제하게 되자 동양종교의 배화교 교주였던 짜라투스트라와 힌두교와 불교에서 그 답을 찾았고, 동양종교와 사상을 철학의 용어들로 각색하고 서양식의 옷을입힌다.
쇼펜하우어 역시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언어로 교환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각하고 만든 철학이나 사상은 동양사상의 번안하여 실영주의화 한 것들이다.
그래서 당시 서양에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사상으로 환영을 받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 학생이 유학을 다녀와 거기서 배운 새로운 학문을 가르칠 때 새로운 것처럼 받아 들이듯.
우리 동양에서는 자연스럽게 배어져 온 사상이지만, 서양에서는 새로운 충격에 가깝게 반응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사상을 받아들여 서양의 실용주의의 옷을 입혔고, 이는 다시 동양으로 역수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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