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똑같은 글을 쓰는 것이지만 장르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듯 학문의 세계에서 각각 그 종류대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의 영역을 소개하지만, 넘어서지는 않아야 한다.
헬라어로 윤리는 에토스(ἔθος)이고, 도덕(道德)의 영어인 "Morality"는 라틴어 moralitas에서 유래했다.
신학에서는 <교의학>과 <윤리학>을 나눈다.
교리와 교의에 대한 이해
교의는 상위개념으로 성경에서 찾아낸 진리의 체계이다. 그러나 교리(敎理, doctrine)는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진 기본적인 원리를 가리킨다(딤전1:10;딤후4:3).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재료를 모아 신앙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교회 공의회에서 형성되어 교회 권위가 승인한 신앙의 규범이다.
신앙을 교육하고 훈련하고 논쟁하는데 길잡이가 될 지적인 이론을 제공해 준다.
이와같이 체계화된 <종교의 가르침>으로 믿음의 근거와 가치 판단의 기준 제공하나 교회의 공적 인정을 받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진리로 불변하나, 교리는 신학으로 교단이나 교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교의(敎義, dogma)는 특별히 교리들 가운데서 발췌된 것으로 교회가 공적 권위로 인정하는 교리의 핵심적인 요소다. 종교의 본질적인 것으로 고백된 기본적이고 주요한 원리들을 특별히 가리킨다.
(1) 내용이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2) 형식으로는 교회가 공적으로 선언한 것이며
(3)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단체의 표현이고
(4) 전통적인 가치성을 가져 후대에 전달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3) 교회에 의해서 명백하게 인정되고 임명된 권위자들에 의해 제정된 교리에 적용된다.
* 교의(dogma)는 성경적인 용어보다 신학적인 용어이다.
교리(doctrine)와 교의(dogma)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는가?
교리가 권면의 성격이라면,
교의는 강제적이라는 차이도 있다.
교리가 종교적 진리의 개인적 표현이라면, 교의는 종교적 진리의 표현이다.
교리로서의 헬라어 '디다스칼리아'는 기본적인 가르침을 의미하고(디모데전·후서), 교의로서의 헬라어 '도그마'는 공적인 판결이나 칙령이라는 뜻으로만 사용되고 있다(행16:4). 교의는 교리나 교훈보다 범위가 협소하며, 모든 교리는 교의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 그러나 구별하지 않고 교리를 교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의의 필요한 이유
교회가 이단과 거짓, 사이비로부터 신앙을 수호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할 필수적인 것들의 가르침이다. 하나의 복음을 강조함으로서 이단과 신앙의 혼잡과 가르침의 혼선을 막아야 했다(갈1:7;엡4:5).
또한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체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요17:3). 교회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것이다(엡6:17). 신자와 신입한 초신자들을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교훈을 가르치는데 필요하다. 성경을 깨닫고 해석하는데 필요하다.
인간의 조직적 본능과 인격의 통일적 성격이 성경 진리를 체계화하는 교의를 요구했던 것이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① 교회는 교리를 근본으로 세워진다(요17:3;마28:20)
② 교회의 통일성이 교의의 일치를 요구한다
③ 교회의 안전과 진보를 위해 필요하다 (딤전3:15,1:13)
교리(doctrine)와 교의(dogma)를 만드는 과정
1) 성경에 대한 각 자의 해석 ->
2) 해석의 체계화(개인교리) ->
3) 개인 교리를 하나로 체계화(교단 교리) ->
4) 교단 교리 중에서 공적으로 체택한 교리(교단 교의)
교리(doctrine)와 교의(dogma)의 예들
1) 교리(교단의 성경해석의 구속력을 가짐)
조직신학으로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으로 구성됨.
2) 교의(교단의 법적 구속력을 가짐)
(1) 신조(12개 항으로 구성됨)
(2) 성경소요리문답(107개 문답으로 구성됨)
(3) 성경대요리문답(196개 문답으로 구성됨)
(4) 정치(총론과 제23장으로 구성됨)
(5) 헌법적 규칙(제13조와 부칙으로 구성됨)
(6) 권징조례(제14장으로 구성됨)
(7) 신도개요(제33장으로 구성됨)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의 '헌법'(2007.1.10 발행)에서 인용함
교의학은
사람을 위해, 사람에게, 사람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동들을 기술한다.
그러나 윤리학은
새롭게 된 사람이 이제 그 하나님의 행위를 근거로 그 능력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을 기술하는 것이다.
교의학에서는 사람이 피동적이어서 받으며 믿는
반면,
윤리학에서는 그가 스스로 행동하며 나선다. 교의학에서는 신앙의 조항들이,
윤리학에서는 십계명의 규범들이 다루어진다.
교의학에서는 믿음에 관해,
윤리학에서는 사랑, 순종, 선한 행위들에
관해 다루어진다.
교의학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며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교육하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의 창조자, 구원자, 거룩하게 하는 분으로 알게 한다.
윤리학은 이제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이며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완전히 지혜와 뜻과 모든 힘을 다해 감사함과 사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헌신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교의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체계이며, 윤리학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체계다.
개혁과 윤리학에서 바빙크는 둘 간의 차이를 똑같은 언어로 서술한다.
교의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다룬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다. 교의학은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온 말씀으로서 우리 밖에서 우리 위에서 우리에게 온 말씀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열어 하나님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경청한다.
윤리학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할 때, 지금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는 인물로 말미암아 그 일들을 토대로 하여 능동적으로 행한다.
우리는 시편들을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지만,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것이지만,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다.
교의학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임을 알지만,
윤리학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이마에 기록될 것이다(계 22:4.
교의학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지만,
윤리학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만, 윤리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결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바빙크는 윤리학의 방법론은 교의학의 방법론과 같다고 말한다.
위대한 신학자 바빙크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은 그의 <교의학>에 서 다루는 내용과 <윤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 본다.
그의 개혁교의학에서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대해 설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양심》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타락 후 곧바로 아담과 하와의 눈이 열려,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이 <악을 행했다>는 것을 알았고 인식했다는 것을 포함한다.
《부끄러움》은 치욕에 대한 두려움이며, 잘못된 것이나 부적절한 것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고통스런 감정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분 앞에 자신을 숨기려는 욕망이 부가된다.
즉, 인간 내부에 양심이 일깨워진다.
엄격히 말하면, 타락 전에 인간 안에는 양심이 없었다.
타락전에는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반드시 되어야 할 것>을 아는 것 사이에 격차가 전혀 없었다.
존재와 자의식은 조화를 이루었다.
존재와 자의식, 타락으로 인해 분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이
다른 존재이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법과 일치해야 한다는 의식을 여전히 유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증거한다. 인간은 자신이 반드시 되었어야만 할 존재가 아
니다. 그리고 이 증거는 양심이다
(개혁교의학 3권, 박태현 옮김, 210).
범죄한 이후로 인간의 《자아중심성》은 오만함과 불신앙의 문제를 포함한 아주 폭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마치 모든 죄가 이 토대로부터 논리적으로 흘러나온다는 듯이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죄의 세 가지 기본적인 유형
(1) 자기 자신에 대한 죄
(2) 이웃에 대한 죄
(3) 하나님에 대한 죄.
이 죄의 세 가지 유형은 각각 또 다시 감각적인 죄와 영적인 죄로 구분될 수 있다.
따라서이웃에 대한 죄는 이웃 또는 이웃에게 속한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죄이고, 이 죄는 감각적인 성격을 지닌 죄일 수도 있고, 영적인 성격을 지닌 최일 수도 있다.
전자는 이웃의 재산이나 생명에 대한 죄이고, 후자는 이웃의 선한 평판이나 권위에 대한 죄다. 따라서 바빙크의 윤리적 죄론은 자신의 개혁교의학에서 다룬 죄론을 보완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3장에서 "죄의 상태 속에서 인간의 도덕적 상태"에 관해 다룬다.
바빙크는 죄가 인간의 본성, 영혼과 육체, 이성, 의지, 감정에 미치는 결과를 서술하고, 본성적인 인간(자연인)에게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반 은혜를 주어서 악을 행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억제함으로써 인간을 보존한다.
타락한 인간조차도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을 소유하고 있고, 이 본성은 각자의 양심을 통해
드러난다. 양심은 하나님의 율법에 묶여 있으므로, 바빙크는 양심을 다루고 나서 곧바로 율법(본성적이고 도덕적인)과 율법이 개인, 사회, 국가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