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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이 남긴 교훈

징비록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요, 그 총명함으로 선조의 사랑을 받았던  관료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지은 책이다. 임진왜란 후 그의 반대파들이 그를 파직하라는 탄해 상소가 빗발쳐 선조조차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그의 파직과 함께 이순신도 마지막 승전보를 알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조선을 위기에서 건진 위대한 전략가와 맹장은 그렇게 약사의 뒤안길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준 저서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과 뼈아픈 실책 등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하여 작금의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가츠려 주고 있다.

그는 고향 안동으로 낙향하여 죽기 전 조선의 비운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는 이러한 실패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것으로 교훈으로 가득하다.
懲-징계하다 毖-경계하다 錄- 기록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외세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해야 했던 굴욕을 기록한 사기(史記)이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민낯을 유성룡은 피눈물로 쓴 자기 성찰이며,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조정의 실정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고자 책을 쓴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 징비(懲毖)'라는 책의 제목은 『시경(詩經)』「소비편(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25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쟁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했다.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는가?
전쟁 발발의 배경, 전투가 벌어졌던 당시의 상황, 《조선·일본과 명나라》간의 삼각 외교 관계, 그리고 주요 장수들에 대한 묘사와 전투 성과, 이후의 백성들의 생활상 등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이다. 1592년은 임진년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기에 임진왜란이라 하고,  6년 뒤 정유년에 다시 침공하여 일으킨 난으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징비록은 당시 조선의 관료였던 유성룡의 관점에서 외교, 조정의 국사, 육군과 해군 등의 상황과 주요 전투인 탄금대전투, 평양성전투,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벽제관전투, 남원성전투, 전주성전투, 명량대첩, 노량대첩 등을 상세히 기록한 역사기록물로 후대를 위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유성룡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비판 등을 담고 있다.
징비록 서문에서 “위태로운 상황을 바로 잡지 못하고(危不持) 넘어지는 형세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였으니(顚不扶) 죄는 죽어도 사면을 받을 수 없다(罪死無赦).”라며 처절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난세의 영웅이라 했나. 그러나 난세에 역적의 패당들이 무리를 지어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출세와 야욕을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그들의 탐욕은 한 세대가 지나고 또 다시 병자호란[인조 14년(1636)]으로 또 한 번 굴욕 아니 치욕의 역사를 남긴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교훈 삼아야 할까?
바로 역사가 그것을 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