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에서 산업화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오랜 식민지배기간, 6.25 전쟁으로 국토는 피폐해졌고, 국민들은 보릿고개의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어떻게 산업화를 이룰 꿈을 꿨을까?
자원도 없는 나라, 무얼로 먹고살 것인가?
군사독재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설계할 수 있었을까?
당시 초등학교 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그래서 국가가 빵을 배급해 주었고, 예방주사, 책과 옷은 물려 입기 하던 시절이었다.
비료공장, 농약도 없고, 경운기나 리어카도 없던 시절....
중학교 때도 배를 많이 곯아야 했었다.
깊은 한숨과 서러움의 눈물이 흐르던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배고픔을 해결해 준 대통령으로 기억이 난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우리나라가 아무 <기술>도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수출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을까?
거기엔 눈물 나는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적자 수출'이었다.
아니 손해 보고 판다고,
원가보다 물건이 싸게 판다고...
이거 미친 거 아닌가?!
그랬다. 어찌 보면 미친 짓이다.
그런데 미친놈이 맨 손으로 범을 잡는다.
세상에 우리의 물건을 내놓아야 우리 제품을 알릴 수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헤쳐 나온 방법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다.
기술은 하루아침에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로열티를 주고 사 오든지, 우리가 개발하든지 해야 한다.
첫째는 우리 민족에겐 죽기내기 정신이 있었다.
시간 싸움, 납기일을 맞추어야 하는 데... <빨리빨리>와 죽기 내기로 해낸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손기술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든 것을 보고,
이게 최고 성능인가?
이 과정을 꼭 이 매뉴얼대로만 해야 하는가? 만일 매뉴얼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하는 의문을 품고 다시 만들 때는 물건을 쉽게, 편리성을 더하고 기능을 변형하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적자 수출
당시엔 1만 원짜리 제품을 원가보다 저렴한 8천 원에 팔아야만 했다.
원가는 재료비+인건비+물류비인데, 이것이 1만 원이었다. 그런데 8천 원에 수출해야만 팔리던 시절, 그래도 이 미친 짓을 해야 했던 이유는 외화를 벌기 위해서였다.
외화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던 가난하던 시절, 피눈물 난 서러움이 여기에 있었다.
적자라도 수출하면 달러가 들어오고,
그걸로 고용도 생기고 기술도 사 올 수 있었거든요.
문제는 손해를 어디서 메꾸나?
문제는 기업은 수출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손해를 국내 소비자에게 수출보다 비싼 가격에 팔게 해 줬다.
1만 원짜리를 1만 3천 원에 팔게 했던 것이다. 수출하면 200원 적자인데, 대신 내수용은 300원이 남게 해서 100원의 이득을 보게 해 주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라디오, TV와 같은 전자 제품은 수출가보다 내수용은 두 배 넘게 비쌌다.
또 수출입은행을 통해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받는 방법을 대기업에 제공하여 기업이 더 많은 고용으로 실업자가 없게 하는 정책이었다.
덕분에 삼성·현대 같은 기업이 성장했지만, 반면 93%의 대기업은 50년 안에 사라졌을 정도로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도 이를 모방해 왔다.
지금 미국조차도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제조업을 되살리려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다. 그러니 국가가 기술·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국민 마인드를 키워 주어야 한다.
배고픔의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 다시 위대하게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핵심 주제
- 적자 수출은 후발 산업국의 생존 전략
- 내수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아 수출 손실을 보전
- 정부의 제한 경쟁 정책으로 기업 성장 유도
-적자 수출이 고용 창출과 기술 도입의 선순환 구조 형성
- 4차 산업혁명 시대, 투자 방향의 전환이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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