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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투쟁인가 공산주의 운동인가 아타깝게도 항일투쟁 혹은 독립운동이 순수했던 분들이 계셨다. 정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이끼며 자신들의 목숨을 다 바치신 분들이 계신다.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이 글을 써야만 한다. 때로는 좌파나 우파에 의해 어떤 이는 미화되고, 어떤 이는 매도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교과서에 《독립운동가》로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그들은 나라의 독립보다 나라의 독립과 함께 곧바로 공산주의 정권의 나라를 세우려고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 독립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고자 떠들었다. 재중국 ... 「식민지에서는 사회운동보다 민족독립운동을 먼저 하여야」한다는 레닌의 새로운 지령이다." 김구의 측근이었던 임시정부 내 보수세력인 민필호는 '김원봉은 사사건건 김구에게..
대한민국 근세 역사, 불편한 진실 독립군과 광복군 이들은 독립군 10개 부대를 통합 · 재편성하여 1920년 12월 병력 3천5백 명의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했는데,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사실상의 북간도 독립군 통일군단이 되었지만, 무장이 빈약했기 때문에 제3국으로부터의 군사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936년에 장제스의 제안으로 임시정부는 중국에 있는 전 조선인 무장세력을 규합하여 광복군 조직을 추진하고 있었다.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1940년 9월 성립전례식을 준비, 계획하였다. 광복군의 지휘권은 중국의 국민당 정부가 통제하고 있었으나 1944년 8월 임시정부로 통수권이 넘겨졌다. 1940년 9월 15일 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 김구 명의로 「한국광복군선언문..
화폐, 국가 부채, 누가 주인인가?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화폐를 사용했을까? 호조태환권은 1893년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로 알려졌다. 대한제국 당시 고종황제가 경제 근대화를 위해 추진했던 화폐 개혁 때 발행한 화폐로,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며 유통되지 못하고 대부분 소각됐다. 1904년에 제1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화폐발행권이 박탈당한 뒤인 1905년부터 일본제일은행의 주도로 일본의 오사카 조폐국에서 대한제국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도안에 들어있는 남자는 당시 일본제일은행의 소유주였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다.[9] 후면에는 영어로 dai ichi ginko limited promises to pay the bearer on demand ○○yen in japane currency at any of its branches.(다이이치..